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네치아 공화국 (문단 편집) === [[이탈리아 반도]] 북부 진출 === 베네치아는 제노바와의 전쟁 이후 도제 미켈레 스테노의 정책아래 육상으로의 확장을 시도했다. 트레비소(1389년)를 시작으로, [[베로나]](1405년), [[파도바]](1405년), [[롬바르디아]]의 [[브레시아]](1426년), 베르가모(1428년)까지 진출하여 밀라노 공국과 접하게되었으며, 16세기 이후 해상 영토의 상실을 만회하기 위해 진출 방향을 [[이탈리아 반도]] 내부로 돌려 베로나, 파도바 지역을 [[베네토]]로 칭하고 볼로냐 등 로마냐 지역에 베네치아 속령을 설치했다. 이런 식으로 형성된 영토를 본토 속령이라고 불렀다. 교황 [[율리오 2세]]는 베네치아에게 [[볼로냐]] 지역의 반환을 통보했으나 베네치아는 거절하였고 갈등이 촉발되었다. 1508년 12월에 교황이 주도하여 프랑스, 스페인, [[신성 로마 제국]] 등과 캉브레 동맹을 결성하면서 베네치아를 압박했다. 율리오 2세가 [[오스트리아 대공국]], [[카스티야 연합 왕국]]-[[아라곤 왕국]], [[프랑스 왕국|프랑스]]를 끌어들여 결성한 캉브레 동맹과 벌인 1509년 5월 아냐델로 전투에서 베네치아는 처참히 패배하고 그동안 얻은 이탈리아의 영토를 다 토해냈다. 그후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세력에 의해 북이탈리아 영토를 잃은 데 불만을 품고 있던 프랑스와 다시 동맹을 맺은 베네치아는 1515년에 이르러 아냐델로의 패배로 인한 피해를 만회하고 영토를 회복하였다. 하지만, 그 이후 북이탈리아에서 더 이상 영토를 크게 확장하지는 못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